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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가 된 세월호…그러나 우리에게도 의인은 있었다 스크랩 0회
작성자 : 의인경철군의삶(jmbkaja)
등록일 :
조   회 : 2810
스크랩 : 0
수치가 된 세월호…그러나 우리에게도 의인은 있었다 낙서장

2014/04/29 14:12

복사 http://blog.naver.com/ywkimd/60213749068

 

  • 방송 출연 중에 접한 세월호 침몰 소식. ‘별일 아닐거야’. 201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10여분 만에 배가 45도에서 90도 기울어졌다는 소식에 간단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은 실종 200여명.

    처음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에서도 그렇게 전복되거나 좌초된 선박에서 사나흘씩 버틴 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닷물에 빠지면 저체온증으로 1시간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매번 기적의생환은 있었다’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이런 기적이 세월호에서 일어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이리 흐르고 나니 가족들에게 ‘희망 고문’을 한 것 같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고개를 듭니다.

    뻔한 거짓말…전통을 더럽힌 이준석 선장

    이준석 선장의 행태는 정말 선장이라면, 아니 어른이라면, 아니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행동입니다. 어린 학생들을 두고 속옷 바람으로 승무원들과 탈출을 하고, 일반인이라고 신분을 속이고, 병실에서 지폐를 말렸습니다.

    수사를 받을 때도 변명하기에 급급합니다. 어디에도 들리지 않는 피선 명령을 했다고 버젓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따로 확인해보니 출항 전에 화물을 싣고 배의 균형을 체크하는 밸런스 테스트를 했다고 했답니다. 수사 당국은 밸런스 테스트도 하지 않았고, 화물도 제대로 묶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될 배는 침몰해 있어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준석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들은 여객선을 인양하고 나면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 좌초된 세월호
    이런 행태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세계 선장들의 자랑스런 전통을 더럽혔다”고 맹비난했습니다.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시작은 버큰헤이드호였습니다.

    1852년 영국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남아프리카로 향하던 중에 케이프타운에서 65km 떨어진 해상에서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탑승객들은 모두 630명. 이 가운데 130명은 여성들이었습니다.

    불빛도 잠을 자는 새벽 2시. 파도가 다시 치면서 배는 허리가 끊겨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승객들은 배꼬리로 피신했지만 이대로라면 수장될 수 밖에 없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습니다. 구조선에 탈 수 있는 인원은 180명에 불과했고, 상어 떼도 득실거렸습니다.

    누가 봐도 공포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지만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침착했습니다. 전 병사에게 갑판 위로 집합하도록 명령했고, 병사들은 열을 정돈해 부동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부녀자들이 구명정으로 피신했습니다.

    마지막 구명정이 배를 떠날 때까지 장병들은 꼼짝하지 않고 불을 밝히면서 의연하게 대처했습니다. 배가 완전히 침몰했을 때 일부 장병만이 주변의 부유물을 붙잡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오후가 돼서야 구조선이 도착했지만 이미 43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생존자는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명령이라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두들 잘 알면서도 마치 승선 명령이나 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준수하였다."
    버큰헤이드호 사건 이후 세계 선장들에게는 여자와 어린아이 먼저 구조시키고 죽음을 명예롭게 받아들이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그로부터 60년 뒤인 1912년 4월 10일. 세계 최대의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영국을 출발해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중에 유빙에 출동합니다. 승객만 220여명. 유빙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사고도 없었을 테지만 충돌 이후 대응은 버큰헤이드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배 침몰 직전까지 어린 아이와 여자들을 먼저 구명정에 태우고, 자신은 영원히 바다속에 영면했습니다. 당시 타이타닉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은 서로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라는 말을 건네며 침착한 대응을 독려했다고 합니다.

    ‘초개처럼 목숨을 버린’ 의인은 있다

    이런 전통이 과연 외국만의 전유물일까요? 어떤 이들은 우린 이준석 같은 선장 밖에 없느냐며 한탄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바다 사나이들이 있습니다.

    사고 원인을 놓고 이번 세월호와 판박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서해훼리호 사고. 1993년 위도 인근 바다에서 서해 훼리호는 정원을 초과하는 승객을 싣고 가다 회항하려다 복원력을 잃고 침몰했습니다. 모두 292명을 잃었고, 사망자 명단에는 백운두 선장도 포함됐습니다. 처음에는 도주설이 나돌았지만 나중에 마지막까지 구조에 힘쓰다 목숨을 거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서해훼리호
    이 뿐만이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착잡한 마음에 든 한 권의 책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고, 남의 목숨을 부지하게 해 주고 대신 숨을 거둔 의인들도 소개돼 있었습니다.

    지난 2001년 1월 15일 유조선 p-하모니호는 울산에서 여수로 향하던 중에 갑작스런 폭발 사고를 당합니다. 불이 기름에 붙으면서 모든 선원들이 제대로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바다로 뛰어 들어야 했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김학실(여) 실항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심경철 항해사가 자신의 튜브를 던져주고, 자신은 맨몸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바다에 몸을 피했지만 이제 엄습한 것은 저체온증. 튜브 하나에 의지하면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때 함께 있던 이창무 선장은 김학실 실항사를 다독였습니다. 멀리 떨어진 배를 보면서 계속해서 김 실항사에게 “자 이제 얼마 남았나”며 계속 물은 겁니다. 김 실항사가 정신을 놓지 않게 하려고 계속 대답을 하도록 한 겁니다. 김 실항사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배들을 보면서도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며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버티다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마지막으로 구조를 기다리던 이창무 선장은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튜브를 던져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심경철 항해사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의인 심경철 항해사 기념비
    이준석 선장과 승무원들은 우리의 수치입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다른 이들을 위해 소중한 목숨까지 버린 의인들은 많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봉우리 채 뚝 떨어진 학생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아직 생사여부조차, 시신조차 확인되지 않은 많은 이들이 부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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