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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알린 ‘숨은 영웅들’ 스크랩 0회
작성자 : 이하동문(ilovesailing)
등록일 :
조   회 : 1375
스크랩 : 0


 

“이 연구는 환경보건학회 회원들의 성금과 자원봉사로 수행되었습니다.”

2012년 한국환경보건학회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노출 실태와 건강영향 조사’ 보고서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국내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실태조사는 이처럼 정부 용역이 아닌 학자들의 자발적인 연구로 이뤄졌다. 당시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방관을 보며, 피해자들의 현실을 보며, 학자들의 양심이 움직였다.

2012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로부터 피해조사를 의뢰받은 환경보건학회 소속 학자들은 자비를 들여 자료 분석과 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환경보건학회장이었던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당시나 지금이나 정부 내에 화학물질 피해에 대해 조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없는 상태였다”며 “학회원들 사이에 당장 급한 살균제 사용 실태조사와 건강영향 조사 정도는 우리가 돈을 모아서 비용을 충당해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학회원들은 5개월 동안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을 찾아나서 의료기록을 검토하고 설문·측정조사를 실시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백 교수는 지난해 5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환경단체 활동가들의 영국 레킷벤키저 본사 1차 항의방문에 전문가로 동행하며 힘을 보태기도 했다.

2012년 조사에는 백 교수 외에 당시 한국방송통신대 박동욱·이경무 교수, 순천향대 박정임 교수, 경희대 임신예 교수, 인하대 임종한 교수, 서울대 최경호 교수, 하종식 박사 등이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과 임흥규 팀장, 학생 연구원 다섯명도 조사진으로 참여했다. 모두 자신의 연구 주제와 관련된 참사를 외면하지 못해 참여한 이들이다. 학자들이 피해자 실태조사에 나설 당시 정부 관계 부처들은 2011년 역학조사 결과와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판매 중지를 시킨 것으로 할 일은 다 했다는 분위기였다. 책임 떠넘기기에만 골몰하던 정부 부처들에 대해 피해자들은 강한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조사진이 2011년 4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 174건 중 조사 참여에 동의한 95건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31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숨졌고 사망자 가운데 어린이와 가임 여성이 각각 65%와 26%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참상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기업과 소비자 간의 문제라며 방관하던 정부도 공식적인 대응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피해자들과 환경단체가 추천한 전문가들과 정부 측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관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공식적인 피해조사와 판정 작업도 시작됐다. 백 교수는 “현재 피해자들 일부에 대한 긴급 구제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피해 접수나 조사 등은 여전히 임시방편적 성격에 머물고 있다”며 “화학물질 피해에 대해 체계적으로 감시·관리하고, 부처 간 역할을 조정할 수 있는 상시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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